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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방황하는 칼날'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제작된적 있다. 책으로는 굉장히 두껍지만, 문체가 쉽고 내용전개가 빨라서 흥미진하게 읽을 수 있다. 겨울 휴가지에서 하루만에 읽었다는.. 방황하는 칼날






법이 범죄자를 보호한다면 믿겨지는가? 법은 국민과 사회시스템을 위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법의 이중성과 모순은 늘 존재한다. 

법 하면 떠오르는 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은멀고 주먹은 가깝다"


소설 '방황하는 칼날'에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지만, 개인의 원한과 복수를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사법시스템에서 '복수'라는 것은 피의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결과를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온다. 


방황하는 칼날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말하는게 아니다.

또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정의를 위해존재하는 법이 불의를 위해 봉사하는 역기능을 고발하는 것이다.


몇가지 생각할점이 있다.




1. 내가 납치강간, 살해당한 딸의 아버지라면?

  - 주인공은 자신의 딸을 납치, 강간 살해한 살인범을 모두 찾아나선다. 한명은 현장에서 무참히 살해한다. 

    살인은 나쁘지만, 자신의 딸을 고기취급한 강간살해범앞에서 '살인'은 과연 나쁘기만 한것인가, 복수는 늘 피해자가 참아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살해당하나 딸의 아버지라면 동일하게 범죄자를 잡아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실정법상 복수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복수를 하는 순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하게 되는게 함정..


2.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영화속에서 법은 피해자가 아니라, 살인자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과연 그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정의는 어려운것이다. 히가시노게이고가 말하는 법의 부조리는 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정의란 것은 '픽션'일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정의가 제대로 선 사회일수록  '공정사회', '선진국'일 수 있다.


법이 대상에 따라서 고무줄늘어나듯이 제맘대로 적용된다면, 일절의 희망도 기대할 수 없을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사회는 그런 사회에 가깝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는 사회이며, 대상에 따라 법이 적용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는 불공정 사회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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